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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 ​MYŪJIAMU > / 2020.12.17 - 2021.1.12 / 공간형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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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MYŪJIAMU> 전시 전경 / 2020

​촬영: 양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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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재와 분류의 공간: 그중에서 사랑이 제일이라면

글 콘노 유키   

 

 

“제일 좋다”는 말에 들어간 “제일”이라는 표현은 “무엇보다”라는 표현과 상호적으로 관계한다. 말하자면 제일은 여럿이 전제되어야 하며, 여럿이 있어야 비로소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일 좋다는 기준은 선별의 결과로서 도출된다. 지극히 개인적이건 통계적이건 제일 좋은 대상은 여럿 중에서 선택받은 대상이다. 다른 한편 제일이라는 표현은 근본적인 원칙의 의미이기도 하다. “안전제일”이라는 표현이 그렇듯이, 제일은 다른 척도보다 ‘앞서는’ 것으로, 그 기준을 중심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제2 원칙이 따라오는 경우에도 제일 원칙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제일은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범주이다. 이 두 가지 측면에 바로 이어서 분석하자면, 제일은 첨단적인=가장자리에 선 경험 방식을 제공한다. 관심을 자극하고 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만 ‘꽂히게’ 하면서, 나머지를 배경화하는 경험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이때 꽂히는 대상은 선별 경과―직감이나 신중한 판단을 통해서건―에 따라 나머지보다 뛰어난, 바꿔 말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제일에 근거한 선별 결과는 그 대상에 가치를 부여한다. 이때 대상은 남다른, 유별난, 특출한 가치를 지닌다. 뮤지엄(미술관, 박물관)에서 가치가 부여되는 방식이 그렇다. 그것이 보관되고 소장될 이유는 대상, 즉 보물에서 생활용품까지 아우르면서 그 대상에 특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가치 부여를 통한 대상의 부각은, 궁극적으로 그 대상이 함유하는 시간이 사회 역사적 문맥을 고려하여 위치되는 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뮤지엄에서 소장품은 언뜻 보면 영속적이다. ‘시대를 초월하는’이라는 표현이 빈번히 사용되는 것처럼, 그 대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옛날부터 계승되는 가치를 내포하기에 소중하게 다루어진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시대를 초월하려면’ 시대가 지나야 하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상 또한 다르게 보인다. 그 시대의 생활용품이 과거를 끌어안고 오늘날에 소개되고, 그 당시의 기술이 오늘날 못지않게 뛰어나다고 할 때, 우리는 그 흐름 즉 시간적 경과를 전제한다. 뿐만 아니라 가치 판단에 우리는 시간적 경과에 따른 차이 및 구분을 전제한다.

 

가치가 대상에 주어질 때, 우리는 그 기준을 영속성이라는 이름하에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가치의 영속성은 시간적 흐름 속에서 특정된 시간축을 통해서 세워진다. 이 세워진 시간축 자체만 봐서는 우리는 대상으로부터 시간성을 감지하기 어렵다. 마치 사진에 블러 없이 대상이 포착된 결과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대상이 시간적 흐름 어디에 속하고 또 위치하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거꾸로 말해, 시간을 특정하려면 (사진의) 블러와 같은 자취나, 고정된 순간의 전후 위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뮤지엄이라는 공간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공간은 대상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여주는데,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적재와 분류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다. 바꿔 말해 시간은 그 자체로 순간적이지 않고, 적재와 분류를 통해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설령 시간이 순간적이거나 대상의 가치가 일시적인 것으로 우리가 받아들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려면 어떤 것들 중에서 선별되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상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려면/간주하려면 우리는 전후의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까지 본 것처럼, 제일의 법칙―즉 상호적으로 제2...(... 이하 생략)의 것들과 제2...(... 이하 생략)의 법칙을 전제로 하는 법칙―은 뮤지엄에서 실행된다. 유정민의 개인전《MYŪJIAMU》는 이 제일의 법칙과 이 법칙이 밑바탕에서 적용될 때 작동하는 시간의 경과를 보여준다. 뮤지엄의 일본식 발음인 이 ‘공간’에서, 작품 제목과 설명문처럼 들어간 재료를 보면 ‘처음’ ‘시간’ ‘내일’ ‘2016년부터 2020년’이라는 시간적 모티프를 볼 수 있다. 제목과 재료로 파악되는 시간이라는 모티프는 작품과 전시를 통해서 형식적으로 강조되는데, 바로 전시 디스플레이와 제작 방식에 반영된다. 디스플레이 방식은 작품을 각각 다르게 선별하여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경우에 좌대에 올려지고, 어떤 경우에 유리 진열장 너머 보관된, 또 다른 경우에 작은 작품들로 구성된 하나의 오브제로 소개되면서, 작품은 디스플레이를 달리 하여 다르게 보여진다. 이 기준은 작가의 취향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말로 뭉뚱그려 설명될 수도 있다. 일반적인 뮤지엄과 달리 작가가 전시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면 더 큰 사회 역사적인 가치보다 개인적인 성향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는 뮤지엄의 이러한 성격을 개인전 형식에 가지고 오면서 본인의 작품을 구별하면서 작품과 전시를 틀 짓는다. 예컨대 유리 진열장 너머에 있는 작품의 경우는 크기를 키워 보다 독립적인 작품으로 전시되었고, 작가가 작업에 사용하는 소재를 배열하거나 루틴처럼 그린 그림은 박스와 액자로 각각 보관된다.

 

한편 전시장에서 소개되는 작품 자체가 이미 작가의 지난 시간을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제작 방식에 반영된다. “모든 결과물(=작품)은 ‘결과’이지 않을까?”라는, 답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질문에 대비해서 말하자면, 하나의 덩어리로 도출하는 방식과 달리 그의 작업은 조형물 쌓기나 같은 패턴 그리기를 비롯하여 반복적인 수행을 통해서 제작 시간을 시각화한다. 예컨대 달력 모양으로 배치된 그림과 <정리정돈을 하는 척>, <쓰러지지 않는 것>, <나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어 1-3>을 보면 제작 패턴을 반복하고 그간 재료를 수집한 작가의 시간 또한 작품에 윤곽 지어져 있다. 이처럼 작가 유정민의 개인전은 시간을 공간적으로 보여준다. 시간은 적재와 분류를 통해서 자리를 부여받고 그럼으로써 모두가 동격인 순간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배치한다. 전시에서 작품들은 적재와 분류를 경과하고 (‘헛되이’ 지나치기 쉬운) 삶의 순간에서 클로즈업되고 프레임 안에 자리를 부여받는 가치 있는 대상으로 등장한다. 이번 전시는 적재되고 분류된 형식으로 시간을 보여줌으로써 뮤지엄에서 작동하는 가치 발생의 공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간 자체를 대상화하고 공간화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MYŪJIAMU》의 공간에서 우리는 제일의 법칙, 바로 시간적 경과에 따른 가치 발생을 전시 방식과 제작 방식, 더 나아가 제작에 임하는 작가의 자세에 찾아볼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유리 진열장 너머 보이는 작품 중, 같은 색상을 띤 그릇 모양의 작품 세 개를 관람할 수 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는 제목이 주어진 이 작품만큼 뮤지엄에서 발생하는 제일의 법칙을 잘 대변해주는 작업은 없다. 각각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안에 쓰여 있는 세 개의 그릇을 보고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 할 때 마찬가지로 제일의 법칙이 적용한다. 여기서 믿음과 소망과 같은 미루어보는 태도는 사랑보다 낮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기보다 사랑이라는 핵심을 뚫고 나타난 다른 결과들이다. 믿음과 소망이 전망적인 대상에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일의 법칙은 시간적 경과를 전제로 한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작가의 시간을 적재하고 분류한 결과로 나온 작품과 전시라는 결과물을 지켜볼 수 있다. 적어도, 작가가 제목에 쓴 것처럼 “사랑이 제일”이고 가치 있다면, 우리는 방향 감각이 없는 흐름 속에 있다가 어떤 하나를 프레이밍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믿음과 소망을 통해 가치가 담길 가능성을 미루어볼 수 있다―다른 형태일 뿐, 그것들 역시 사랑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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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은 즐거워 _ 유정민의 수집품, 재활용품, 지점토, 스프레이, 유리 _ 56×98×100cm _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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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_ 지구색연필, 컴퓨터용 사인펜, 종이, 액자 _ 가변크기 _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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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세부이미지 (클릭시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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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지 않는 것 _ 종이 코스터, 목공용 본드, 265×10×10cm _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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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어 3 _ 2016년부터 2020년 동안 써둔 글, 종이, 목공용 본드 _ 10×10×10cm _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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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어 1 _ 2015년부터 2020년 동안 시청한 일본드라마의 스크린샷, 종이, 테이프, 25×5×5cm _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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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어 2 _ 일본 소설 14권, 사진, 유정민의 수집품, 테이프 _ 가변크기 _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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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정돈을 하는 척 _ 플라스틱 수납함, 유정민의 수집품, 책, 플라스틱 공 _ 가변크기 _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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